새로운 길 위에서··· 2007년 보스톤

아이캠퍼 창립자인 박순규는 1970년대 대한민국 최빈민촌 중의 한 곳이었던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의 철거민촌 출신으로 음악이 직업이었던 뮤지션이었습니다.
영원히 뮤지션으로 살 것 같았던 때에 우연히 스노우보드를 접하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 아무런 배경지식이나 경험도 없이 스노우보드 유통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곧,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평생 살기에 충분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유와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운이 좋게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가 생기자 결핍 속에서 20대 청춘을 태웠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문화에서 살아 보고 젊은 시절의 로망이었던 버클리 음대에 입학하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잘 되는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부담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으로 선뜻 미국행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에 우연히 본,
교보 타워 건물에 걸려 있던 문구

“일단 떠나라.
가다가 힘들면 쉬어라.
쉬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일 수 있으니…”가
그의 미국행을 결심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업계 3등 안에 들 만큼 잘나가던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보스턴으로 가 버클리 음대에 기타 퍼포먼스 전공으로 입학합니다.
당시 학교 내 최고령 학생으로서 10대를 갓 벗어난 동료 학생들과 친구처럼 어울리면서 실현될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에 꿈을 꾸는 듯한 학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한편 그에게는 또 다른 로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방황하던 20대에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On the Road)를 읽은 후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미대륙 횡단 여행이었습니다.
그는 2008년부터 약 3년 동안, 방학 때, 또는 학기 휴학을 하고, 2500 달러를 주고 산 중고 트레일러를 끌고 타이어가 세 번이나 터질 동안 미대륙 약 58,000 마일을 달렸습니다.

그 길 위에서 그는, 가장 부자 나라의 가장 가난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순한 미소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배웠고 조슈아 트리 사막 위 밤하늘에 펼쳐지던 광막한 은하수를 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몇 년 후 아이캠퍼 브랜드 슬로건, Love People, Love Nature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 다른 여행의 시작··· 2013년 파주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축적해 놓은 부를 이용하여 음악을 즐기며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자 했던 애초의 계획을 틀고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바로 2013년 5월 아이캠퍼를 설립하고 루프탑텐트 개발에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루프탑텐트를 선택한 건 한 측면으로 보면 특별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즉, 주어진 운명에 맞서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를 시도했던 그의 삶 자체가 여행이자 모험이었고 루프탑텐트는 그런 그의 삶에 딱 어울리는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새로운 기회에 대한 포착이었습니다. 2013년 당시 그가 분석한 루프탑텐트의 글로벌 시장 상황은,
50년이 넘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크기가 아주 작았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자가 없었고 메이저 브랜드가 없었으며 혁신이 없었습니다.

어떤 시장이 이런 요소들을 갖고 있다면 아이템에 상관없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을, 운 좋게도 그때 그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첫 아이템으로 선정한 것이 세계 최초로 4명이 잘 수 있는 확장형 하드쉘 루프탑 텐트였는데 그 당시에는 4명이 잘 수 있는 하드쉘 텐트가 없었으며 개발만 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루프탑텐트를 개발해 줄 수 있을만한 업체나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자기가 만들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으며 하나같이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들겠다고 마음 마음먹었습니다. 제조업 경험은 물론, 설계나 소재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오직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할 수 있다는, 강한 자기 확신, 그리고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끈질긴 내적 욕구뿐 이었습니다. 설계 프로그램을 배워 그야말로 0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수년 동안 길가에 꽃이 핀 것을 보고 계절이 바뀐 것을 알던 밀도 높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후 2013년 가을, 확장형 하드쉘 텐트를 개발하던 와중에 하드쉘 텐트보다 비교적 개발이 수월한 소프트탑 루프탑 텐트 인 아이캠퍼 로드트립이 먼저 세상에 나옵니다.
로드트립은 소프트쉘 루프탑텐트에서 디자인과 기능적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몇 가지 혁신들을 시도한 제품이었으며 실제로 첫 전시회에서 일반 사용자는 물론 업체 관계자
들에게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호평과는 달리 첫 전시회에서의 구매 계약은 3~4대, 약 2년간 실제 판매는 총 30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처참한 실패로 돌아갑니다.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인지도와 비싼 가격이었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흔한 할인행사나 공동구매, 광고, 판매점에 무상 전시 등의, 판매를 위한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판매를 위한 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안되면 될 때까지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몇 대의 제품을 팔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본질적으로 해야 할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4년 봄 갖은 어려움 끝에 드디어 세계 최초의 확장형 하드쉘 루프탑텐트인 하드탑원을 출시합니다.
이 제품은 로드트립과 달리 첫 전시회에서 30대 가까운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총 판매 대수가 약 100대 정도에 이르며 국내에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매출로, 단순 수입 제품이 아닌, 자체적으로 개발된 제품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적자는 쌓여만 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애초에 아이캠퍼를 설립할 때 타깃 시장이 국내가 아닌 글로벌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추가적인 개발에 비용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여름 첫 해외 전시회인 솔트레이크 OR 쇼에 정부 지원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그 전시회에서 미국 내 몇몇의 인터넷 언론사의 눈에 띄어 하드 탑원이 기사화되면서 처음으로 아이캠퍼가 영어권에 노출되게 됩니다.

기사는 호의적이었고 하드 탑원의 혁신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몇몇의 관심을 표하는 이메일이 전부였으며 그마저도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모두 연락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런 어려운 시기에도 어느덧 2016년 봄이 왔고 이미 약 1년 전부터 개발을 진행하고 있던 스카이 캠프의 시제품이 완성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스카이캠프는 하드 탑원이 갖고 있었던 여러 가지 단점들을 완전히 다른 구조적 설계로 해결한 제품이었고 사용 편리성, 디자인, 기능, 내구성, 가격 등의 거의 모든 면에서 월등히 더 좋은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5월 하드 탑원과 스카이캠프 시제품, 그리고 아이옥스 시제품을 갖고 미국 오버랜드 엑스포에 참가합니다.

오버랜드 엑스포는 말 그대로 오버랜딩 장비를 위한 전시회이고 많은 관련 업체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뭔가 결과가 있으리라는 기대로 갖은 어려움 끝에 참가했지만 거기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회사는, 국내에서 어느 정도 판매가 되던 하드 탑원의 매출도 국내 캠핑의 인기가 시들해짐에 따라 현상 유지 또는 하향세로 돌아서며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의 결승골 같았던 성취··· 2017년 글로벌

그렇게 밖으로는 직접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고 해외 언론들의 이메일을 응대하며 안으로는 제품 설계, 개발, 사진 및 비디오 촬영, 카달로그 제작, 웹사이트 구축 관리, 특허 업무 등의, 생산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며 대 여섯명의 직원들과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쌓여만 가는 적자를 재정적으로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어지던 2016년 겨울,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지막처럼 혼신의 힘을 스카이캠프 시제품을 완성하여 직접 찍고 직접 편집한 스카이캠프 홍보 비디오를 아이캠퍼 영문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신기술과 혁신 제품을 다루는 페이스북 페이지들이 그 비디오를 공유합니다.
그러자 곧 수많은 유사한 다른 페이지들이 앞다투어 스카이캠프 비디오를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남미를 넘어 중동, 아프리카까지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중 미국 경제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운영하는 테크인사이더에 공유된 영상은, 조회 수 약 1억 뷰에 수십만 개의 댓글이 달리는, 제품 홍보 영상으로는 유례가 없는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하게 됩니다.


그가 직접 구축한 아이캠퍼 영문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 가끔 틀린 영어를 지적하는 영어권 고객의 친절한(?) 이메일을 받던 - 하루에 많게는 천 개가 넘는 이메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 비디오가 공전의 히트를 날리자 일찍이 스카이캠프로 킥스타터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하기로 결정하고 홈페이지에는 캠페인의 시작 날짜와 시간,
그리고 펀딩 시작 가격을 적은 배너를 대문짝만 하게 올려놓았습니다.


드디어 2017년 2월 27일 미국 서부 시간 기준 아침 10시에(한국시간 새벽 1시) 킥스타터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캠페인 시작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고 캠페인을 시작하자마자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펀딩 금액은 1분 만에 10만 달러,
24시간 만에 150만 달러를 기록하고 45일간의 캠페인에서 킥스타터 아웃도어 장비 역사상 최고 금액인 237만 달러의(한화 약 27억) 펀딩을 성공시킵니다.

몇 년간의 싸움에서 얻은 놀라운 승리에 대한 축하파티를 그날 새벽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업 시작 후 처음으로 흘린 짧은 눈물로 대신한 그는 잠깐 눈을 붙인 후 다시 회사로 출근합니다.

그는 그것이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할 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펀딩 참여자들이 받은 스카이캠프에 혹여 어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그들이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 기회가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모든 것 이 물거품이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밤낮 구분 없이 더 좋은 제품과 성공적인 배송에 혼신의 힘을 쏟은 결과 그해 10월까지 모든 배송을 완료하였고 펀딩 참가자들의 호의와 관대함에 힘입어 5점 만점에 4.8이라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전 세계 35개국으로 수출되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고 2017년 40억에서 매년 약 두 배씩 성장하여 2020년 250억,
2021년 500억을 바라보는 규모로 성장하기에 이릅니다.


함께 그리는 무늬··· 2021년 파주

이제 아이캠퍼는 하나의 글로벌 커뮤니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캠퍼를 사용하며 그들의 친구 그들의 가족과 함께 그들의 인생에서 소중한 한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찍기 시작한 작은 점들은 시간이 더해감에 따라 다른 이들과 함께 찍는 점이 되고 그 점들은 이제 아이캠퍼 임직원은 물론 전 세계 고객과 아이캠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리는 무늬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캠퍼의 무늬는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그리는 무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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